고아원 아동에서 한 사회복지기관의 회장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복지의 산증인,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故김석산 회장
고아원에서 꿈을 키운 소년이 소외된 아이들의 아버지로…
■ 故김석산 회장이 걸어온 길
김석산 회장과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전신인 기독교아동복리회(CCF)의 첫 만남은 5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회장은 1941년 10월, 일본 규수에서 태어나 해방과 동시에 아버지, 어머니, 누나와 함께 귀국했다. 그러나 얼마 후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고물 수집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던 중 고물처리물 폭발 사고를 당한다.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그는 걸인수용소를 거쳐 대전의 아동시설 천양원에 입소하게 된다.
김 회장이 기억하는 천양원의 원장어머니는 CCF의 지원(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전신)을 받게 해달라고 날마다 기도했다고 한다. 아동복지라고는 고아원 개념뿐이던 그 시절, CCF에 가입되어 선진국의 ‘어린이복지’ 혜택을 받는 것은 꿈과도 같은 일이었다. 김 회장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살겠다고 결심한 건 천양원 시절, CCF의 지원을 받은 그 순간부터였다.
이후 경희대 영문과 졸업을 앞둔 1963년, CCF 한국지부에서 후원자들의 영문편지를 번역하면서 사회복지사업에 뛰어들게 되었다. 김 회장은 염원과도 같았던 CCF에 취업한 후 가짜 밍크코트를 사들고 제일 먼저 천양원의 원장어머니를 찾아뵀을 정도로 고마움이 컸다.
김 회장은 CCF의 번역사로 시작하여 CCF 한국지부 군산분실장, 한국복지재단 사무총장, 부회장 등을 거쳐 1995년 7월 재단 회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평직원에서 회장의 자리까지 오른 한국 사회복지의 산증인인 셈이다.
그는 이후 사회복지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등 전문가로 자신을 경진하는 한편, KBS 사랑의 리퀘스트 운영위원회,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 등 다양한 사회복지분야의 회장을 맡아 활동하였다. 외롭고 힘들게 자라온 성장기를 거쳐 그는 살아 생전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아들딸을 둔 아버지로, 늘 새로운 후원자를 만나는 일로 24시간이 모자란 나날을 보냈다.
故 김 회장은, “저는 후원자들의 후원금으로 배움의 기회를 얻었고, 후원자들이 보내준 글에서 사랑을 받고 자랐습니다. 저에게는 낳아주신 부모님도 계시지만, 저를 키워준 후원자님들 또한 저의 부모입니다. 제가 어린이재단의 회장으로서 우리 아이들을 위해 평생 사회복지의 외길을 걷게 된 것은 바로 운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입버릇처럼 얘기했다. 48년간 어린이재단과 함께 국내외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선물해온 소외 어린이들의 아버지, 故 김석산 회장의 3주기 추도식은 6월 20일 대전에서 열린다.
■ 故김석산 회장 별세 3주기 추도식 일정
* 일 시: 6월 20일(목) 오전 11시
* 장 소: 대전 공원묘원
* 참 석: 이제훈 어린이재단 회장, 재단 측 간부 12명, 故김석산 회장 가족 10여 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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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0일은 故김석산 회장님 별세 3주기입니다.
지난 한 삶 가득 소외된 어린이들만을 위해 헌신했던
故김석산 회장님을 생각하며 추도 댓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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